2007년 개인전 학고재아트센터2020-03-16T18:39:07+09:00

Project Description

2007년 개인전 학고재아트센터

2007.6.6~6.12

춤추는 별을 꿈꾸다

춤추는 별을 꿈꾸다

공주형 (학고재 디렉터)

꿈을 꾸었다. <악몽>이었다. 존재가 명확치 않은 내용물이 냄비에 가득했다. 돌돌 말린 종이 띠 모양의 내용물은 존재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악몽에 대해 이야기 했다. 혹자는 시작과 끝이, 원인과 결과가, 안과 밖이 맞물려 시원스레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뫼비우스 띠 같다고 했고, 혹자는 이것이 유전(遺傳)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발병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다는 점에서 ‘뫼비우스 증후군’과 흡사하다고 했다. <미궁>이었다. 문제는 출구보다 의지였다. 어떻게 미궁에 빠졌는지 골몰하다 꼭 나가야 한다는 의지를 굳건히 할 수 없었다. 악몽에서 미궁으로, 미궁에서 다시 악몽으로, 힘든 동선이었다.

<함께하는 시간>, 이윤정 <삶>의 동선은 그러했다. 볕 좋은 창가에서 고양이가 이리저리 능청스레 굴리다 망쳐버린 실타래들 같았다. 13억 중국인이 사용 중인 4,000여 개 성씨 가운데 중요한 것의 계보를 뿌리와 가지, 잎으로 배치해 계보를 정리했다는 ‘만성대수(萬姓大樹)’란 이름의 수형도(樹型圖)와 같았다. <함께 하는 시간>이 왜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되어 발목을 잡는지, 그것도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이 함께하는 <삶>이 왜 복잡한 수형도가 되어 머리를 아프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가면>를 쓰기로 했다. ‘어느 날 뱀이 건강의 여신 히게이아를 찾아왔다. 뱀이 아픔을 호소하자 건강의 여신은 물약을 처방했다. 마시면 다 잊어버리는 물약이었다.’ 가면은 이윤정이 스스로에게 내린 일종의 물약과도 같은 처방이었다. 하양, 초록, 노랑, 빨강. 여러 색으로 손수 <가면>을 만들었다. 자가진단 후의 처방이었으므로 조제도 그의 몫이었다. 얼굴을 가렸다. 동그란 얼굴에 네모난 <가면>은 불편했지만 유익했다. 가면 안에서 시간을 허락받았다. 생각할 시간이었다. <악몽>을 떠올렸고, <미궁>을 생각했다. <함께하는 시간>을 떠올렸고, <삶>을 생각했다. 그랬다. <함께하는 시간>이 만든 <삶>이 부가한 역할에서 비롯된 <악몽>이고, <미궁>이었다. 누군가 말했듯이 ‘엄마’는, ‘아내’는 명사(名詞)가 아니라 동사이다. 짐짓 모른 체했던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용기를 내어본다. 의욕도 부려본다. 그리고 <옷에 몸을 맞춘다>. 정방형 옷에 몸을 맞춘다. 맵시도 나지 않고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다. 옷에 몸을 맞추고, 세상에 나를 맞추며 더 많은 여유, 더 너른 시야를 확보한다. 그래서 <악몽>과 <미궁>에 마구잡이로 덤비지 않는다. 직사각형 모양의 종이 띠를 180도 꼬아 양끝을 연결하면 고리 모양의 뫼비우스 띠가 된다. 뫼비우스 띠의 시작과 끝의 신비를 한 순간에 캐내려고 무조건 가위질을 해대면 폭이 작은 또 하나의 뫼비우스 띠가 생긴다. 이 사실은 <가면> 속 시간에서 배운 것이다.

 

오늘만은 제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확신을 가지고 행복해하겠습니다. 다음 세상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서도 말입니다. 오늘만은 주변 상황이 나와 욕망에 맞도록 요구하지 않고 나 자신을 주변 상황에 맞추겠습니다.

 

김재순의 <그 다음은 네 멋대로 살아가라> 중 <오늘만은>의 한 구절처럼 이윤정은 ‘몸에 맞던 옷을 찾던‘ 어제와 다르게 오늘 ‘옷에 몸에 맞춘다.’ 과거에 하나의 외로운 <섬>이었고 심난한 <또 하나의 얼굴>이었던 이윤정의 <자화상>과 <일기>는 현재 이렇게 <꿈>이 되었다. <악몽>이 아닌 <꿈>이 되었다.

세상과 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혼란, 그 속에서만 춤추는 별이 탄생한다고 했다. 오늘 이윤정은 춤추는 별을 순산했고, 그 별이 바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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