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고개

어린 시절 친구들과 스무고개 놀이를 하던 기억이 있다. 

스무고개 놀이는 한 사람이 어떤 단어를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상대방이 스무 번까지 질문을 하여 그것을 알아맞히는 수수께끼 놀이이다.

질문에 따라 첫 번째 질문에서 간단히 답을 맞출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마지막 질문에서도 답을 맞추지 못할 수도 있다.

질문자와 답을 맞추는 자 모두가 내가 되는 일인이역의 스무고개 게임을 시작한다.

나는 산길을 간다.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고개를 넘으면 나타나는 또 하나의 고개.

고개고개마다 만나는 풍경은 같은 듯 모두 다르고 같은 고개에서 만나는 모습도 시간마다 다르다.

고개를 넘으며 이 너머에 내가 찾는 그곳이 나타나길 기대한다.

답을 찾으려 여기저기를 헤메본다.

바닷가도 거닐어보고 산길도 다녀본다.

처음에는 내가 풀어내야 할 답만을 생각하고 걸었으나 점차로 주변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떠가는 구름, 부딪치는 파도, 날아가는 새, 뒹구는 바위….

그들을 볼 수 있는 것은 내 맘에 생긴 여유 때문일까?

만약 종국에 내가 이 스무고개의 답을 맞추지 못한다면 그 여정 속에 보았던 그 풍경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 모든 것에 답을 하지 못한 채 이번에도 열다섯 번째 고개를 넘는다.

                                                                         -작가노트-

이번 전시의 제목 스무고개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말 그대로 ’스무 개의 고개‘ 즉 산수 그림이기도 하고 단어 맞추기 게임인 ’스무고개‘를 의미하기도 한다.

산과 바위는 레이스 끈을 한지에 찍어 묘사하거나 실제 레이스 끈을 재봉하던 이전 작품들과의 연결선에 있다.

한지에 겹쳐 찍힌 레이스 끈의 흔적과 재봉된 레이스 끈은 평면 위에 쌓여 두께를 형성하며 부조의 형태에 가까워진다. 그들이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모양은 그것이 묘사하려는 바위와 산의 형태를 그리지만 특유의 문양과 질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것은 처음에 생각하지 못한 우연한 수확이다.

 채석강의 주름 잡힌 바위들과 해초로 덮여 한층 부드러워 보이는 제주 함덕의 바위들을 그려보았다. 그러면서 그 주변에서 발견되는 작은 것들로도 눈을 돌려본다. 내 작업의 큰 틀에서 빗겨나가지만 뜻밖에 옆에서 발견되는 즐거운 풍경들도 살짝 끼워 넣어 가볍게 그려 보았다.

                                                                      <작가노트>

나는 한지 위에 먹물 묻힌 레이스 끈을 찍어 그 흔적을 겹쳐서 바위와 산을 그린다.

한지 위에 찍힌 레이스 끈의 흔적은 일종의 동양화 준법인 셈이다.

흔적은 흐느적거리며 쌓이고 쌓이며 단단해져서 바위가 된다.

그 위에 채색과 레이스 끈의 꼬임과 접힘을 강조하는 점들을 무수히 겹쳐 칠하고 찍으면서 바위와 산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