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長生) Long Life

박소희(영은미술관 전시팀장)

영은 미술관은 아티스트 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되는 영은창작스튜디오 11기 이윤정의 ‘장생’ 展을 개최한다. 이윤정은 동양화를 전공하고 10여 년 전부터 끈에 주목해 작업한다. 작가는 모필을 사용한 전통적인 필선을 사용하지는 않는 대신 끈을 붓으로 활용한다. 끈은 점차 영역을 확장하고, 역할을 더해 작품의 한 부분이 되어(부조) 화면을 구성하는 한편 작품 자체가 되기도 한다. 끈은 이렇듯 다양한 방법으로 변주되어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장치로써, 작품의 시작과 끝에 시종일관 존재한다. 한지위에 레이스 끈을 찍어 나타난 선, 혹은 선 주위를 잘라내고 남은 끈은 동양화 준법의 기능으로 원래의 목적을 수행하는 동시에 미적 공간에도 이바지한다.

이번 전시 제목인 장생을 가시화한 바위는 끊임없이 들이치는 파도와 바람에도 그저 그 자리를 지키는 십장생의 하나이자 장수의 상징이다. 이번 전시 대표 작품인 <바위 수집, 2019, 가변설치>에서 끈은 이러한 크고 작은 바위가 되어 전시장 한 편을 흔히 보는 풍경으로 연출한다. 바위는 언제 생겼는지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자신의 주름만큼 누적된 시간을 보냈으며, 그 세월의 궤적이 다시 끈이 되어 전시장에 굴곡 진다. 모든 존재는 세월이 남긴 주름을 각자의 방식으로 갖는다. 바위도 사람도 다르지 않다. 레이스 끈 주름은 시간의 흔적으로 특별한 궤도가 되어 바위가 되고 공간에 주름진다. 이윤정의 끈 주름은 가치의 여부나 쓸모를 떠나 존재함에 대한 증표이자 생존에 대한 일종의 상(賞)인 셈이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먼 발치에서 끈이 만든 바위를 먼저 보고 가까이에서 바위가 된 연약한 레이스 끈을 보게 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그동안 시도한 다양한 매체와 방법론을 함께 보는 기회이자, 다음 전시에서 시도될 또 다른 실험이 기다려지는 자리이다.

영은미술관 YEMCA